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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자격증

[한국사,암기법] 고려시대 - 거란(요)의 1차, 2차, 3차 침입(서희 담판 외교, 강조의 정변, 양규 방어, 강감찬, 귀주대첩, 나성, 천리장성, 초조대장경)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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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며 쉽게 암기할 수 있는 방법도 정리해봤습니다.
더 좋은 암기방법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자료>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거란(요나라), 송나라와 고려의 관계
10~11C - 고려는 호족 중심 

거란족이 만든 나라가 요나라이다.

     → 거란족은 4세기에 등장하여 내몽골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916년에 요나라를 세웠다.

     → 926년 발해를 멸망시켰으며 오랜 기간 고려와 전쟁을 벌였다.

 

암기법!

거란족 → 요나라 : 계란(거란족)요구르트(요나라)랑 먹어야 맛있다.

여진족 → 금나라: 여진이 발생하여 이 갔다.

몽골족 → 원나라: 몽골은 넓은 초원을 갖은 나라.

 

거란은 국경이 맞닿았던 송나라와 관계가 좋지 못했다.

송나라고려와 관계가 좋았다.

     → 거란은 송나라보다 군사력이 강했으며 송을 공격하고 싶었지만 고려가 송을 도울까봐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고려가 좋아할 수는 없었다.

     →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에는 거란은 야만인이니 경계하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이다.

거란의 1차 침입
서희의 외교 담판 (993년)

발해를 멸망시킨 것이 거란이고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이니 고구려의 옛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고려를 공격해 왔다.

 

 거란 장수 소손녕 vs 고려 서희(외교가, 문신 출신의 장군)

     → 서희는 거란 침입의 본심은 고려를 공격하는게 아닌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는데 있다고 판단했다.

 

거란과 교류하지 않는 것은 여진(금)때문이다!

     → 고려와 거란 사이에 여진이 껴 있어서 거란과 교류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강동6주를 고려에 내주다.

     → 거란은 고려가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강동6주를 고려에게 주어 자신들과 고려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것이라 판단했다.

     → 전쟁없이 서희의 외교 능력으로 강동6주를 획득하게 된다.

 

거란의 2차 침입 (1010년)
강조의 정변, 양규의 방어

강조가 왕 목종을 죽이고 현종을 왕위에 올리며 일으킨 정변이다.

 

 거란의 6대 황제인 성종은 강조의 죄를 묻겠다는 이유로 고려를 2차 침입해 온다.

     → 40만 대군으로 침입하였지만 홍화진을 공격해왔지만 양규가 방어에 성공한다.

 거란은 홍화진을 피해서 개경으로 공격해 간다.

     → 개경으로 공격 가는 길에 통주에서 강조는 거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 개경을 점령한 거란군은 고려에 큰 피해를 끼치게 된다.

 

○ 현종이 거란에 신하의 예를 올리겠다고 약속하자 거란은 물러나게 된다.

     → 하지만 현종은 거란에 신한의 예를 올리러 찾아가지 않았으며 3차 침입의 원인이 된다.

 

거란의 3차 침입 (1018년)
강감찬 - 귀주대첩

고려가 신한의 예를 갖추지 않자 거란은 3차 침입을 해온다.

     → 70세 강감찬 장군은 귀주(평안북도 구성) 부근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공격해온 10만 거란군 중에서 수천 명만이 살아 돌아갔다.

북만 민족 침략 대비

     → 개경 전체를 둘러싸 방어하는 나성을 쌓았다. 

     → 국경 주변에 천리장성을 쌓았다.

     → 초조대장경: 부처의 힘으로 국민정신을 통합하여 거란의 침입을 막겠다는 신앙심으로 만들었다.

     → 광군: 거란군의 침입에 대비하여 농민으로 조직된 예비군사조직이다.

 

2022.08.12 - [한국사 자격증] - [한국사,암기법] 고려시대 - 여진(금)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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